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봅니다. 따뜻하던 겨울옷이 한낮이 가까워올수록 무겁게 느껴지고, 뺨에 닿는 바람이 햇볕 가운데서는 조금 느슨히 불어오는 것 같아요. 저는 평일 아침이면 대개 혜화에 있는 한 시집 서점에 출석합니다. 출근이라는 말을 사용하던 때도 있었지만 요새는 출석이라는 말을 씁니다. 여기서 저는 그냥 쓰고 싶은 글을 쓰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습니다. 도서관도 아니고 카페도 아니고 여기는 작은 시집 서점이기 때문에, 고시 공부를 하는 이도 없고, 떠드는 이도 없고, 시집들과 책상과 의자와 제가 있습니다. 하루 중 세 시간 남짓, 꽤 바쁘게 시간을 보냅니다. 와중에 제일 많이 하는 일은, 책을 읽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문득 멍하게 혜화 로터리를 등진 채 앉아 창을 투과한 오전 한순간의 빛이 저의 머리를 지나 서점 바닥에 그림자 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되도록 음악도 듣지 않고, 조명도 켜지 않고.
나는 이 서점의 미생물 중 하나처럼 보글보글 작게 움직이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공식적으로 서점의 문 여는 시간은 점심 이후이지만, 제가 의자 하나를 차지한 채 앉아 있고, 판매를 기다리는 시집들이 여기 있으므로 손님들이 오전부터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서점 점원도, 서점 주인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미생물이므로, 손님 응대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아주 소극적으로 응대합니다. 존재감으로 응대한다고 해야겠지요.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한 시간과 한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감으로요.
저는 밤에는 아침을 기다리고, 꿈을 꾸는 동안에는 꿈을 깨기를 기다리고, 저녁에는 밤을 기다립니다. 서점에서는 손님들을 기다리고요. 이 기다림의 순간들에는 언제나 미생물처럼 보글보글 조금씩 움직이는 제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어느 정도는 확신하면서도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로요. 간밤에는 아침을 기다리는 사이에 꿈을 좀 꾸었습니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꿈인 줄 모를 정도로 현실감이 넘치는 꿈이라 오늘이라는 시간, 어제가 바라 본 아침이 낯설었습니다. 그 꿈을 가지고 오늘 아침에도 서점에 왔습니다.
제가 무엇이 되려고 이러나, 무엇을 쓰려고 이러나 잘 모른 채로, 존재감으로 손님들을 응대하며 손님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손님들도 미생물처럼 서점을 가득 채우고 있지요. 손님들이나 저나 조그맣게 움직이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겨울 내 작게 움직이고, 봄을 기다림으로써, 미생물처럼 다른 것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공평히 흘러간다는 사실이, 우리가 꿈을 꾸면 다음 날이 온다는 사실이, 우리가 기다릴 줄 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