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은 “서로 도우며 함께 삶.”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즘 시대에 공생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몽상가라는 말을 적지 않게 들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인간 사회를 제외한 자연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생이라는 단어를 유토피아적, 몽상가적 관점이 아니라 나의 일상과 삶에 가볍게 곁에 두어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치아를 닦을때에도 우리는 공생을 발견할 수 있다. 칫솔에 손가락의 근육을 사용해 치약을 짜 묻힌다. 손잡이를 손으로 움켜잡고 치아로 가져간다. 치약이 치아에 묻고 팔을 동그랗게 움직이면 칫솔모가 치아와 잇몸에 마찰을 만들어 거품이 부풀어 오르면 치아에 묻어있는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고 이번에 물을 넣고 입안 근육을 오글오글 움직여 헹구어 뱉으면서 오는 상쾌함. 치아를 닦는 과정과 행위 안에서도 공생이라는 창을 통해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매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사물과 공생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가벼운 공생을 시작으로 점점 공생의 범위를 늘려가 보는 것도 나의 삶에 있어서 즐거운 취미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 공생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나의 삶을 보다 나은 길로 안내한다. 사실 가장 어렵고 복잡한 게 인간과 인간의 공생인 것 같다. 자연 생태계는 여러 종들이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공생을 하지만 인간 사회는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공생'을 설명하는 적절한 문장이 있어 가져와봤다. 공생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우리는 조화로운 삶을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 말은 ―식물과 동물은 물론 박테리아와 곰팡이처럼―우리 주위에 존재하면서 우리가 먹는 음식을 구성하는 다른 형태의 생명과 우리가 의존하는 물, 연료, 재료, 도구, 교통수단 같은 자원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더 많이 상호작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 훨씬 훌륭하고 지속 가능한 음식, 공유를 바탕으로 삼는 공동체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문화가 강인한 회복탄력성을 지니려면 기술, 정보, 가치가 서로 관련을 맺고 널리 퍼져나가면서 새로운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 "
센더 엘릭스 카츠,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 중에서』, 글항아리, 2021.